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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6사단 청성부대 레전드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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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6사단

이 부대를 나온 남자들이라면 한국전쟁 당시

전투사에 대해 잘 알고 있을것이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기습 남침에

서울이 순식간에 함락 되고 서부전선의 국군 부대들이 패퇴해

남쪽으로 도주 할때 유일하게 전선을 사수했던 부대가

바로 육군6사단이다.

 

6사단이 춘천을 3일간 방어해냈기 때문에

춘천을 통해 서울 후방으로 진출하여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 섬멸을 하려던

김일성의 인민군 계획을 수포로 돌린것이고

그 3일때문에 미군의 증원이 올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때 6사단이 춘천을 바로 내어줬다면 

지금 우린 경애하는 수령님을 노래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1.흑역사

 

 

이후 중국군의 참전으로 한국의 통일은 방해되었으며

밀고 밀리는 접전중  중국의 대공세가 1951년 봄에 일어난다.

이른바 춘계공세로  가평 북방의 화악산과 사창리 일대로

중국군 4개 사단이 대공세를 가해왔고

이 전투에서 6사단 2연대가 가장 먼저 도망치는 바람에

한-미 연합 방어선이 뒤로 밀리게 된 원인을 제공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이때의 도망 때문에 주변의 미군들은 청성부대 마크를 단 6사단 장병들을

겁쟁이들이라 놀렸으며 조롱하였다고 한다.

 

 

2. 굴욕을 수십배로 되갚은 신화

 

사창리 - 화악산 일대의 패배 때문에

남쪽으로 60km나 밀려난 한-미 연합군의 전선

"이 모든게 다 6사단 때문이다!!"

라는 비난이 주변 부대들에 퍼져서 6사단 마크를 달고 있는것이

쪽팔린 상황에 6사단장은  패배의 책임을 물어

제일 먼저 도망쳤던 6사단 2연대 지휘관들 수십명을

헌병대로 압송하고 6사단 방어 정면 최전방에 2연대를 배치시켜버린다.

 

 

"천년의 원수에게 더 이상 밀리면 안된다!!"

라는 장병들의 구호와 함께

 "결사"라는 글귀를 세긴 머리띠를 두르고

장교들 수십명이 헌병대로 압송된

살벌한 분위기에서 지금의 미사리 일대에서 

6사단은 중국군을 기다린다.

 

 

당시 상황도

북한강 남쪽 지금의 미사리 일대에 배치된 6사단 2연대와

중국군의 공격 방향.

중국군은 3개 사단으로 2연대의 정면과 좌우측면으로

맹공을 가하고 중국189사단은 이후 6사단2연대 후방을 차단하기 위한 기동을 한다

 

 

중국군 3개 사단의 파상 공세...

6사단 2연대는 9배나 많은 중국군에 맞서 싸우다

결국 미사리 남쪽 427고지에서 완전 포위되어

절망적 상황에 빠진다

탄약부족과 식량공급도 차단된채

9배 많은 병력의 공세를 약3일간 버텨낸 2연대.. 

 

 

6사단2연대가  9배나 많은 중국군에게 포위되어

파상공세를 당하자 미군과 한국군의 7개 포병대대가

427고지 일대에 화력을 집중한다.

 

금새 깨질줄 알았던 6사단 2연대가 결사항전으로 버텨내자

중국군은 당황하게 되고

이때 6사단 19연대와 7연대가 중국군의 좌우 측면을 강하게 찌르자

중국군은 자신들이 포위 섬멸전에 빠졌다고 착각한 나머지

그대로 도주하게 된다.

 

 

2만여명의 중국군이 무작정 북쪽으로 도주한다

중국군이 도주하자 6사단과 인접 부대가 바로 추격...

 

 

정신 없이 도망친 중국군은 화천 저수지 일대에서 포위 당하고...

6사단과 미군에게 퇴로마저 차단되자

화천 저수지에 빠져죽거나 저수지 앞에서 도륙 당하게 된다.

 

6사단의 엄청난 전과가 이곳 화천 저수지에서 마무리되고

중국 오랑캐들을 깨뜨린 호수....

라는 뜻의 <파로호>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미 국방부측에서 공개한 

당시 중국군 사살 숫자....

 

이 문서에는 이 당시 전투에서 24시간마다

중국군 사살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파로호 인근에서 사살 당한 중국군 숫자는

무려 2만4천여명...

 

사창리에서 가장 먼저 도망친 부대라는 오명을

한달만에 수십배로 되갚아준 육군 6사단의 신화적 전과이다.

이 전투로 인해 중국과 북한의 서울 재점령 기도를

완전히 좌절시키게 되고 이후 휴전협상 테이블에

중국을 끌어 앉힌 원인이 된다.

 

 

 

근데 최근 <파로호>라는 호수 이름이 불쾌하다는 중국

중국군이 한국전쟁 당시 

단일전투에서 최고로 많이 죽은곳이

파로호이고 이름도 불쾌하니 

호수 이름을 바꾸라고 우리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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