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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이야기

그랜드 호텔 404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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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도로변의 한적한 모텔.

어두침침한 카운터 앞 1층 로비, 로비라고 하기엔 볼품없이 좁고 살풍경인 복도에는
와인색 카펫위로 말라 비틀어저 비비꼬인 선인장화분 하나만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랜드 호텔, 거창하고 큼지막한 간판이 건물머리를 장식하고 있다만,
실상 이곳은 찾는 고객들은 보통 불륜커플이나 장거리 여행객 뿐인 허름하고 허접한 모텔이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몇년 전이었을까? 당시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개그맨이 모텔에 하룻밤 투숙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아직 일류 개그맨 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나와 아내는 개그맨을 한눈에
알아보고 싸인까지 받아 카운터 앞에 장식까지 해두었다.

근래 1,2년 사이들어 유명해진 개그맨은 반년전 토크방송에 출연하여 실감나는 모텔괴담 이야기를 했다.

지방 어느 도로를 지나다 보면 산속에 대뜸 들어서있는 모텔, 불륜커플이나 찾을 법한 곳에서 자신이 귀신을
만났다는 이야기. 전국적으로 유명한 토크 예능에서 마치 단순괴담이 아닌 증언이라도 하는 듯 확신에 차있는
그의 모습은 그 이야기의 몰입도와 오싹함이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되풀이하며 증언하는 듯한 그의 말.


"그곳에는 귀신이 있어요."


대강의 지명과 도로변의 모텔이라는 설명만으로 우리 모텔이 세간에 알려지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없이 카운터에 걸어두었던 개그맨의 싸인이 발단이 되어
어느센가 우리 모텔은 오컬트, 괴담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사람들은 폐가 탐방이라도 나온듯 떼를 지어 모텔을 찾아들었다.

그들이 처음 모텔에 발을 딛을 무렵, 앞으로 만날지 모르는 귀신에 대한 기대감과 설램에 가슴이
설래는 듯 보였지만, 상당수 돌아가는 길에는 기운이 없는 듯 멍하고 초점잃은 표정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아저씨... 여기 진짜로 귀신이 있네요."



나는 의아해하는 것 말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모텔을 운영한지 10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홀로 수많은 방과 복도를 청소하고
돌아다녔지만 난 한번도 귀신을 만나 본 일이 없다. 단 한번도.


"아저씨 여기 404호실 주세요."

"404호실 예약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요."

"404호실 벌써 예약찼나요?"

 


전화 예약이 많았다. 다만 404호실을 예약해 줄 수는 없었다.

404호실의 예약이 밀려서가 아니라 우리 모텔은 애초에 404호실이 없고

4층부터 500호대로 방번호를 배열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404호실은 사실상 504호실인 것이다. 대형포털사이트에 '그랜드호텔'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404호실이 나온다.

우리 모텔에 들렸던 블로거의 페이지를 탐독해보아도 실제로 투숙했을리 없는 404호실에 대한

사진과 글을 업데이트 한 상태였다.

블로거가 올린 찍은 사진들, 모텔로비, 복도, 방문, 방구조 모든것이 우리 모텔의 것과 일치하고 있었다.
블로깅된 글을 모두 읽고 댓글들을 차근차근 읽던 중 등짝을 타고온 전류에 머리털끝이 서는 듯한 쇼크를 받았다.

 



******

경기도양양의이준영 : 쥔장님 404호실 방문사진, 문에 방번호표가 안달려있네요?

ㄴ 들개의피 : 저도 왜 없는지는 모르겠네요; 다른분들이 가져가셨나? 근데 4층 다른호실은 다 500호실임...
저기만 문앞에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방키 주는건 확실하게 404호실임.

ㄴ 경기도양양의이준영 : 그럼 저기 예약할 때 어떻게 예약하면 되요? 404호실이 저기인건가요?

ㄴ 들개의피 : 네, 다만 남자주인한테 예약하면 안됨. 거기 아줌마한테 살짝 말하면 404호실 키 줌요. ㅋ
조심하세요. 저기 진짜로 귀신나와요;; 진짜임...

******



1부 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참 모니터를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 있기를 바랬다만 객실 청소중인 듯 아내가 자리에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4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며 오늘따라 카펫에 벤 쾌쾌한 향이 거슬렸다.

이불더미를 양손 가득 움켜쥔 아내가 복도 탕비실을 향해 걸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도 아랑곳 안는 듯 자연스러운 발걸음에 기운이 빠지는 듯 하다.

"여보." 하고 부르자 태연히 고개를 돌리며 걸음을 멈추는 아내.

"우리 모텔에 언제부터 404호실이 있었어?" 하고 묻자 씨익하고 웃는다.

멍하니 아내를 계속해서 바라보자 아내는 이불더미를
탕비실에 대충 던져놓고는 내 손을 이끌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카운터 좁은 방안에 나를 앉힌 아내를 왜인지 자세를 가다듬더니 만연한 미소를 띄었다.

"인기 좋잖아. 404호실."

아내의 해맑은 웃음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우리 404호실 없잖아. 사람들이 404호실 가려면 너한테 이야기 해야 한다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인터넷에 올라와있어. 어떻게 된거야?"

아내가 계속 웃으니 어쩐지 모르게 나에게도 웃음이 베인다.
내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자 아내는 표정을 한층 더 밝히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404호> 라고 적혀있는 열쇠꼬리.

다만 우리 모텔에서 사용하고 있는 투박하고 네모난 플라스틱
열쇠자루가 아닌 손으로 만든듯 어딘가 허접한 나비모양으로 오린 종이를 코팅하고 속에 빨간색 매직으로
404호라고 적어 놓았다. 정성스레 쓰인 404호라는 빨간글자에 아내의 악취미가 느껴지는 것 같다.

"뭐야?"

"내가 만들었지! 우리 모텔 404호실 없잖아."

"그럼 방 문패도 니가 띄었어?"

아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이 어찌되었든 장사가 잘되면 그만이라는 듯
아내는 나를 타이르며 열쇠를 카운터 열쇠단지에 가지런히 걸어 두었다.

"앞으론 예약도 404호로 받아."

객실정리를 떠나려는 듯 해맑게 돌아서는 아내를 향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404호. 원래 몇호실이야?"

아내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침묵하곤, 내게 대답하지 않은체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 모텔을 오픈했을 때였다. 겨울날 찬바람이 그 전에 비해서 한층 더 매섭게만 느껴지던 때.
광택이 요란스러운 검정색 다운자켓을 입은 여성이 홀로 모텔을 찾은 일이 있었다.

밑에는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자켓 밑단에 슬쩍 가려진 허벅다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마치 잘못보면 웃옷만 입은 형태처럼 허전했다. 그녀는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되려 보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일게했다. 머리칼을 검정색으로 염색했는지 칠흑같이
어두운 단발머리와 말쑥한 생김세가 도시의 여성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세련되고 도도한 아름다움이
짙은 향수향과 함께 넘실거렸다.

그녀는 카운터에 신용카드를 내밀며 14일치를 미리 끊어달라고 했다.

"저, 글을 좀 쓰려고 하는데 조용한 방 없나요?"

조용하고 자시고 당시에는 손님이 얼마 들지않아 모텔복도에서 잠을 청해도 좋을 정도였다.
나는 손님에게 신경을 쓰는척하며 모텔에서 가장 높은 층인 4층의 가장 구석방을 잡아주었다.

스스로 말하길 글을 쓴다는 그녀였지만 때때로 그녀가 있는 방을 찾는 남성들이 있었다.
매번 확연히 달라지는 남성들의 분위기, 인상, 연령대.

그녀에 대한 의아감이 들던 나는 그 이후로도 한달여간 그녀가 장기투숙을
하게 되면서 의아감이 확신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옛생각에 잠긴체 나는 나비모양의 열쇠고리를 집어 들며 404호실로 발길을 옮겼다.
4층의 가장 구석진 방. 이곳은 원래 502호실이다. 괴담이 이슈가 되기 전까지 몇년간 손님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열쇠를 따고 방문을 열자 방안에 향긋한 방향제 냄새가 물씬했다.
벌써 거의 10년이 되가는 동안 한번도 리모델링 하지 않아 그대로인 방.

내가 직접골랐던 카키색의 꽃무늬 커튼, 하얗고 얇은 천으로 쌓인 킹사이즈 침대,
어두운톤의 갈색 화장대, 색바란 꼬마냉장고, 20인치 텔레비전 그리고 그 위에
손바닥 만치 조그마한 고흐의 해바라기 복사품 액자.

모두 먼지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는 모습이다.

귀신따위는 없다. 어디에도.

방안을 가만히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쿡쿡하며 찔렀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듯한 소름이 일며 눈앞이 잠시 시껌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심히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해맑은 웃음을 띄며 서있었다.
짙은 검정의 단발머리가 아름다워보였던 도시적인 그녀.

그녀는 지금 나를 "여보"라 부르고있다.

갑자기 겁을 먹은 탓인지 아내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이 일어 아내의 웃는 모습이 몹시 애잔히 느껴;다.
아내를 가만히 깊게 끌어 안자. 아내도 말없이 양팔을 둘러 나를 가만히 껴안아 주었다.


2부 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늦더위가 기승인 9월의 중순. 관광객이래야 맞을지 순례객이라야 맞을지 모를 손님들의 행렬은 여전했다.
깔딱거리며 빙글뱅글 도는 선풍기 소리가 귀에 익숙해지려고 할때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여...부세요?"

아이와 같은 앳된 여자 목소리.

"네, 그랜드 호텔입니다."

"저, 404호실. 예약하고 싶은데요. 3명."



404라는 숫자의 상징성, 아내는 장사수완에 있어서 나보다 한결 센스가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404호실의 마력에 빨려오는 듯 단 반나절도 예약이 비는 날이 없었다.

심지어 예약을 기다리기 위해 일부러 다른 방에서 하루 이틀씩 투숙을 하며 기다리는 부류의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사람들은 각종 고성능의 사진기와 캠코더를 손에 손으로 쥔체 정문부터 모텔을 프레임 안에 담는 것에 분주했고
그 프레임 안에 담기는 화면 속에서 오래되고 후진 나의 모텔은 귀신이 나오는 모텔의 모습으로써 더욱 안성맞춤인
존재감과 낡은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귀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만 갔다.

어째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혹여나 싶어 404호실에서 하룻밤을 자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밀려드는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여의치가 안았다.

최근들어 원래 하룻밤 단가가 높았던 우리 모텔은 하루 숙박비가 십만원을 넘겼고 가격높은
숙박비에는 아랑곳 안는 귀신마니아들의 만원사례로 사상 이례없었던 귀신특수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며 눈을 감고 고른숨을 내쉬는 아내의 콧잔등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기는 봤어?"

아내가 대뜸 입을 열었다.

"귀신?"

"음."

"아니 못봤지. 자기는 봤어?"

"아니..."

아내는 대답을 하더니 등을 돌려 누웠다.
그리곤 수여분이 지났을까.


아내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시간 모텔 카운터를 지키며 컴퓨터 자판을 끄적였다.

이제 대형 포털사이트에 '그랜드 호텔'을 검색하면 블로그 글 뿐이 아니라
마니아층에서 형성된 팬들이 모여 그랜드 호텔의 카페까지 개설한 상태였다.



의외로 카페의 회원수는 3000명을 넘긴 상황이었고 최근 개설된 탓인지 게시판의 활동도 상당히 활발해보였다.



그곳에서 나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랜드 호텔 방문후기' 게시글들로 그 게시판에는
그들이 목격했다는 귀신의 상세한 특징들이 여러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뚜렷하게 일치하고 있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404호실 외에 4층 복도에서도 귀신이 목격된다는 것이었다.



목을 맨 남자가 때로는 소릴치고 때로는 웅얼거리는다는데 사람들은 그때마다 가위에 눌려
귀신이 사라질때 까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404호실의 귀신은 사진이
단 한장도 없고 미리 설치된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찍힌 영상에도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404호실의 귀신은 사진이나 영상에 잡히질 않는 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조금 더 스크롤을 내리며 보게된 4층 복도에서 목격 된다는 귀신의 사진들.

벌거벗은 여인의 뒷모습들, 여인은 뒷짐에 시퍼렇게 빛을 띄는 칼을 들고 서있었다.


날개뼈 중간만치 오는 검은 머리칼, 뒷모습에서도 어렴풋 보이는 도드라진 쇄골의 윤곽

오른쪽 옆구리에 선명히 보이는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깊고 거친 선이 드리운 칼자국.


"뭘 그렇게 봐?"

뒤에서 갑자기 입을 연 아내를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니
아내는 태연한 얼굴을 하며 벌거벗은 체로 칼자루를 가만히 싱크대에 얹어두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박힌 긴긴 칼자국...



"너 뭐하는거야?"



아내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뭘? 뭘, 뭘하냐는 거야?"

"옷도 안입고 뭐하는 거냐고? 칼들고 어디 갔었어?"

"어딜가긴, 자기도 지금 인터넷에서 읽었잖아."

"무슨 소리야?"

"자기 진짜로 안보이는 구나?"

"뭐?!"

"그 새끼야."

"..."



점점 아내의 눈이 커지며 작은 눈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새끼라고..."

"..."

"왜 말이 없어? 나 만났어. 청소 할때마다 만나. 매일매일 만나고있어. 매일 목매달고 나한테, 그 새끼가 나한테..."



나는 아내에게 달려들어 아내를 세게 부여 안았다.



"그 새끼가 나 죽여버리고 싶데, 날 살려준게 실수래.

나랑 한번만 더하면 소원이 없겠데. 여보, 여보 나, 나, 불안해서 잠이 안와."



아내가 품에 안긴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베여가는 옷자락 위로
아내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내 옷을 부여잡은체 놓을 생각을 못했다.



"문 닫자..."



아내를 웅켜안은 내 손에도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 새끼...

아내가 장기투숙을 하며 몸을 팔던 시절이었다. 그 새끼, 선한인상의 눈매가 뚜렷한 호남형의 장정.
말끔한 청바지 차림을 한 그는 내게 502호실의 위치를 물어 왔었다.

그리고 수시간이 지난 이후 새벽, 카운터로 객실전화가 연결되었다.



떨렸던 아내의 목소리, 내가 방으로 발을 옮겼을때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아내는 소리죽인체 울며 온몸에 타올을 둘러매어 허리춤에 흐르는 피를 눌러막고 있었고,
그 남자는 대형 실링팬에 몸을 의존한체 목을 매곤 대롱거리고 있었다.



나도, 아내도 그곳에서 성매매가 이루워졌었다는 것을 경찰에 알리기엔 부담이 컸다. 나는 암묵적으로
그녀의 성매매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범죄였다. 그녀의 크나큰 동조자.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는 모텔을 장기간 닫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나는 그의 시신을 여러쪽으로 갈라야한다는 결심을 했다.



다음날 밤 나는 세자루의 큼지막한 검정색 비닐봉지를 모텔 뒷산에 묻었다.
땅을 충분히 깊게 파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아직 늦겨울이었던
날씨 때문인지 삽자루는 쉽게 땅바닥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했다.

아내의 상처에선 피가 상당히 흘렀지만 병원에 가지 않은체 자연히 살이 붙는 것을 기다려야했다.


장기에 닿지 않을 만큼 얕았던 것이 다행이었다만 흉은 지워질 수 없이 짙게 베어갔다.

그 이후 두달여쯤 후 TV뉴스에서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성매매녀를 노린 연쇄살인. 과학수사로 인해 발켜진 지문조사 결과 용의자가 거의 확실시 되었으며,
범행도구와 범죄자의 위치를 찾지 못했으나 신원을 확인해 추적중에 있다는 뉴스였다.

화면을 꽉체운 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내가 웅얼거렸었다.



"나는, 이제 죽일 가치가 없데요. 그냥 살려 주겠데요..."



뱃가죽에 붙은 살들이 거진 다 아물었음에도 이따금 쑤셨는지 옆구리를 슬슬 쓸어내렸다.
내가 아내와 결혼을 하게된 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아내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게 된건 그로부터 반년 이후였다.


모텔을 팔기로하고 한달. 예약은 끊임이 없었지만 모텔방은 요즘들어 조금씩 빈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하룻밤 숙박비를 이십만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귀신 성수기, 마니아들의 광적인 집착은 몇십만원의 숙박비에는 아랑곳 안았다.

바보같은 건지 열정적인건지 알 수 없는 귀신마니아들은 주인이 돈에 미쳤다는 둥 독한 소리를 뱉었지만
모텔을 찾는 발길이 끊일 줄을 모르며 집안의 통장잔고는 날로 늘어갈 뿐이었다.


404호실의 청소는 언제나 내 담담이 되었다만
어째서인지 내 눈에는 아직도 그 놈이 보이질 않았다.



청소도중 천정에 걸린체 멈춘 실링팬을 지긋히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목을 매단모습의 귀신따위는 나에게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방송국에서 찾아들었다.



리포터로 보이는 아리따운 아가씨와 그 뒤로 보이는 열댓의 스탭들,
이미 카메라를 들고 스탠바이중인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하룻밤 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잠깐 한,두시간정도 취재해봐도 될까요?"



새로생긴 종편방송의 심령코너에서 나온 취재.

내가 다른 것을 따지지도 안은체 돈에대해 묻자
그들은 잠시동안의 촬영이라기엔 놀랄만큼의 금액을 제시했다.



404호실의 예약을 두시간 미루며 대기손님에게 남는 방을 무료로 제공했다.
방송취재란 말에 대기객들은 호쾌히 대기를 승낙하며 방으로 사라졌다.

아내는 고개를 좌우로 가르며 촬영엔 참가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했으나
결국 404호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촬영을 하게되었다.

리포터는 모텔 정면에서부터 모텔 카운터, 계단, 복도 순으로 촬영을 전개해갔다.

별것없는 계단에서 일부러 겁이나는 듯 호들갑을 떠는 모습과
카메라가 꺼진 후 담담해 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만큼 판이했다.



404호실에 들어선 나와 리포터

원룸형 모텔에 촬영이랄 것이 무엇이 있으랴. 화장실과 객실을 한방퀴 빙둘러
촬영한 그들은 내게 집요한 질문을 삼십분정도 하고선 촬영을 접었다.

기대하던 귀신은 나타지 않았다.



"이거 언제 방송되요?"



내가 묻자 리포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촬연전의 나긋한 모습은 사라지고
눈발이 날릴 듯 퉁명한 표정을 하며 뒤돌아 스탭들에게 웅얼거렸다.

그러자 한 스텝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거 모래 밤 열한시면 방송이에요."



통장입금을 확인한 스텝들은 분주히 촬영장비를 챙기곤 사라져 갔다.
촬영팀들이 모여 만들어 놓은 담배꽁초들이 널부러진 땅바닥을 치울까 고민하다 그냥 카운터로 발을 돌렸다.


"너도 볼래?"



아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카운터룸에 이불을 깔았다.
10시 55분 얼마안있어 방송이었다.

TV의 전원을 켜자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광고화면 오른켠 위로 <특집>이라는 선명한 빨강글씨가 눈을 사로잡았다.


얼마후 특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충격적인 화면이 약 삼십분간 흘러 나왔다.

귀신은 내 눈에만 안보였던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에 분명히 담긴 귀신의 모습은
나의 옆과 나의 등 뒤에서 정신산란히 움직이고 있었고 내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또 귀신은 내 시선에서 벗어난 틈을타 리포터의 몸을 더듬거나 핥으며 농락하고 천장에 올라 붙었다.
벽구석 이쪽저쪽으로 순식간에 들러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 아닌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방송 마이크의 담긴 귀신의 선명한 목소리가 TV를 통해 카운터룸을 시끄럽게 울리는데도
아내는 아랑곳 안는지 안들리는지 곤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정신을 빼앗긴듯 TV화면에 몰두해 귀신이 소리치는 반복적인 말을 듣고 있었다.



"야!! 야!!!! 이 새끼 창녀랑 결혼했어!!! 이 새끼 마누라 창녀야!! 내가 돈주고 따먹었어!!! 야!!!! 크하하하 야!!!!
이 개새끼, 야!! 이 새끼가 나 토막내서 나 저기 옆 산에 갔다 묻었어 이 씨발새끼. 야! 야!!!! 야!!!!!!!!!!!!!!!!!!!!!!!!!!!!!!"

한참을 TV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마지못해 수화기를 집어들자. 알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404호실 예약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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