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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이야기

[공포] 이름을 지어서도, 불러서도, 존재하지도 않아야 할 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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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왔고 나는 간만에 잘잤다 하는 소리와 함께 힘껏 기지개를 폈다. 
아줌마는 벌써 일어났는지 나만 방에 남겨져 있었고 
정갈하게 이부자리를 개서 놓고는 거실로 나갔다. 

부산하게 뭔갈 준비하고 있었는데 옆엔 이미 가방꾸러미가 두개나 있었다. 
아침인사를 하는 날 보더니 여전히 싱긋 웃는 눈 인사로 대신하고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하며 주방쪽을 손가락질 했다. 


주방으로 가니 간촐하게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간만에 먹어보는 아침식사라 그런지 좀 더부룩 하긴 했어도

아줌마의 의외의 음식솜씨에 한그릇을 금세 비워내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벨이 울려서 나가보니 선월이 왔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올라가는데 마당에 개들이

나와 눈만 마주치면 사납게 짖어댔다. 


선월이 지나가니 얌전해졌는데

왜 나만 보면 그렇게 살벌하게 짖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선월이 오자 아줌마는 챙겨논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세워진 중형차가 있었는데 그게 아줌마 차였나 보다. 


그녀는 재산이 없는듯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좋은건 다 가지고 있는듯 했다. 
아줌마는 트렁크에 짐을 싣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월 말 잘 듣고있어 라며 차에 탔고

선월은 여전히 말 없이 눈 인사만 할 뿐이였다. 


아줌마가 떠나는 걸 보니 왠지 마음이 훵한게 
같이 지낸지 며칠되지 않았지만 굉장히 정이 들어버린듯 했다 


한참을 밖에 서서 그녀가 간 자리를 보고 있자니

팔을 툭툭 치기에 집으로 들어갔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하게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어보고 있는데 
선월이 몇살이냐 물었다.


14살이라고 하니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말수가 적고 작은 체구와 달리 행동이 느릿느릿 했는데 
첫대면에도 느꼈지만 모든게 여자같이 조신하고 정갈했다. 

그날은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밤이 되자 나는 조금씩 불안했다. 


아줌마가 없는 집은 굉장히 으스스했고 유난히 넓었다. 
그리고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데에 초조해져서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이 들면 그것이 지 세상인냥 활개치

또 내 위에서 몹쓸 짓을 하고 날 괴롭힐거 같았다 


아줌마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강하다 두렵지 않다 자기세뇌를 했지만 
몸으로 한번 느낀 공포는 절대로 잊혀지지가 않는다. 
절대로 자지 않을거라 다짐했지만

세상에 감겨오는 눈꺼풀엔 장사 없다더니 잠이 쏟아져 왔다. 


찌륵찌륵 귀뚜라미 소리가 자장가같이 들렸는데

점점 그 소리가 늘어진 테이프처럼 느려졌다. 


쩌--르르륵.. 쩌------르르르륵 


순간 뭔가 왔다 하는 느낌이 들자 어김없이 내 눈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그것이 이번엔 거꾸로 서있었는데

공중에 붕 떠있는 상태로 거꾸로였다 
가발같은 지저분한 머리가 내 몸에 닿을듯

닿지 않았는데 서서히 내 얼굴쪽으로 다가왔다.. 


난 가위눌림처럼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고

그걸 그냥 정면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입에선 겨우 신음만 흘릴수 있었는데

그건 그런 신음소리가 듣기 좋은지 고개를 파르륵 떨었다. 

얼굴이 점점 다가와서 내 머리 위에 서자

나도 모르게 눈이 위쪽으로 향했는데 
그것은 위에 나는 아래로 얼굴이 일자로 마주섰다. 


나는 지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그것의 뻥 뚫린 눈을 피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눈물이 자꾸만 났다.


그것이 그런 날 보며 이상한 소리로 큭큭 거리는거 같았는데..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잡아먹을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아..아 하고 입이 벌어지며 그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진후 
아랫도리가 축축 해지는게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였다. 

깨어난 나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피로감에

겨우 숨만 쉴 정도였는데 여전히 축축한 아랫도리의 느낌에

손을 더듬으니 오줌을 싼것 같았다.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머릿속엔 어서 이 이불을 치워야 하는데 라는 생각 뿐이였는데 
의지대로 되지않는 내 몸이 원망스러울 뿐이였다. 
그대로 잠이 다시 들었다 깨니 오후가 다 되었다. 
이불과 엉덩이는 이미 말라서 내가 오줌을 싼 흔적도 없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걱정이였지만 알게 뭐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그제서야 몸을 겨우 일으켜 이불을 들고 조심스레 밖을 나갔다 


거실에는 선월이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듯 했는데 
깰까봐 까치발로 세탁실로 걸어갔다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살금살금 방으로 가선 
장농에서 이불을 꺼내 덮어씌우곤 아무렇지 않은척 거실로 나갔다. 

선월은 어느새 깼는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날 보더니 늦잠 잤네 한마디 하곤 주방으로 가서 상을 차리더라.

말 없이 마주보며 밥을 먹는데 아줌마와 달리 선월은 너무 불편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때쯤 선월의 휴대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왔고

한참의 통화후 설거지를 마친 나에게


같이 갈래?


라고 했다. 


아줌마가 혼자있지 말라고 했던것도 기억이 나고

지난밤에 있었던 일때문에 당연히 따라가겠노라 했다. 


집을 나선후 선월을 작은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갔다. 
그곳은 공장이 즐비한 곳이였는데

대로변 커피숖 앞에 차를 세우곤 그곳으로 들어갔다. 


난 그냥 뒤따라 갔고 그곳엔 젊은 여자가 선월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갑게 인사를 하던 여자는 날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눈짓을 했다 
선월은 친척동생 입니다 한마디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눈치껏 뒷자리에 따로 앉았는데 
선월이 내 몫으로 파르페를 시켜주곤 그 여자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안듣고 싶어도 사람 귀는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다 듣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전부터 신월을 알던 사이 같았다.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하는 모습이 그렇다는걸 알게 했다. 
인근에서 술집을 하는데 다 망한 가게를 헐값에 인수해서 영업했는데 
그녀가 한후로 엄청난 호황이였다고 한다.

장사가 잘되서 종업원들도 많이 부렸는데 
언젠가부터 장사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고, 
그곳에는 숙소같은게 있었는데

거기서 숙식하는 종업원들이 갑자기 시름시름 앓아서 
일을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고 매일같이 손님이 왔는데

거짓말처럼 손님이 딱 끊겨서 공치는 날도 생기고 해서

이유를 찾아봐도 별 소득이 없었고 장사가 잘되서 그런곳에 일하는 종업원들

선불을 빌려주는데 돈이 모잘라서 돈을 빌려서 마춰주었는데

일은 못하고 장사도 안되고 하니 양쪽으로 죽을맛이였나 보더라. 
어느날 갑자기 안되는게 말이되냐며 
아무래도 여러모로 이상한 일이 많다며 선월에게 도움을 청하는거다 

얘기를 나누던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처 먹지도 못한 파르페를 두고 난 일어나야 했다. 


여자는 같이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나를 뒤돌아보더니 
오빠 따라다녀 재밌냐며 묻더니

잘생긴 친척오빠 둬서 좋겠다 하며 꺄르륵 웃었다. 


난 멋쩍게 그냥 웃어 넘겼고 그녀의 가게에 도착했다. 
그곳은 지하였는데 술집이라그런지 눅눅한 술 냄새와

곰팡이 냄새 같은게 배서 고약했다. 


들어가자마자 선월이 한바퀴 휘 둘러보더니 뭐라고 중얼 거렸다 
난 그냥 그게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얼거림을 멈추더니 저기 하고 손짓했다. 


사방이 여러 거울이 있었는데 한쪽에 꽃그림이 어지러운 벽지로

마감된 벽을 가리켰는데 여자가 달려가서 보니 이상하게

못이 벽에 박혀있는게 아니라 모서리에 박혀있다면서


이상해!


라고 소리쳤다. 

나도 따라가서 보았는데 진짜 아주 작은 녹슨 못이

모서리에 대충 박혀있었고 선월이 그걸 손으로 탁 치니 톡 떨어졌다. 


구멍이 살짝 나있는걸 보고 그곳에 뭔가로 매꾸라고 하고는

선월은 가겠다며 나갔고 그 여자는 봉투를 들고

뛰쳐나와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내려갔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무당이 그런것도 하는구나 싶었다. 
티비에 나오는 무당은 작두 같은데에 올라타고

무서운 화장을 하고 굿 같은걸 하고 쌀 같은걸 뿌리면서 점도 보고 했는데 
선월은 뭔가 도사같이 멋있는 일만 하는거 같아서 신기했다. 


그건 잠시의 착각이였지만.. 


집에 도착하니 벌써 깜깜해져서 난 또 마주쳐야 할 밤의 고통에 한숨이 푹 나왔다. 
그런 나를 선월이 봤는지 고민있냐 물어봤지만

그런 얘기는 아줌마외엔 할수가 없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선월은 도사님 같아서 주문 한방에 뿅 하고

그것을 없애줄수 있을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니 
아줌마도 별말 없었을거란 생각에 잠시나마 의지하려고 했던 마음을 접고는 

고개를 가로젖고 방으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 나는 그날 밤도 그것과 씨름해야 했고

그것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고민이라도 하는 듯

별 해괴한 방법으로 밤을 괴롭혔고 매번 탈진해

정신을 잃어가며 깨어나길 반복했다. 


일주일이 넘어갔을 무렵 내 모습은 마치 미라마냥 피골이 상접해졌고 
급기야 밥을 먹다가도 졸도하거나 씻다가 정신을 잃어서 머리가 깨지는 등 
여러 사건으로 심신이 많이 망가졌다. 

그럼에도 선월은 내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곁에 있으면서 상처 치료나 부축 정도로 날 도왔다. 


기본적인 끼니 챙기기나 그 큰 집의 청소를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고 계속 전화가 불티나게 오는데도

내가 따라가지 못하거나 오래 걸리는 일 같은건 거절하면서도 
병원에 가자 거나 약을 지어오는 일은 전혀 없어서

난 그 점이 아주 이상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나는 점점 기억력도 없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져 버려

반 바보처럼 생활을 해서 중간중간의 일이 거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날은 선월이 처음으로 내게 질문을 한 날이라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가방을 뒤져 뭔가를 꺼내서 내밀었는데 작은 환약 같은게

손마디만 한 통에 들어있는걸 물과 함께 주더니 먹으라 했다. 


무슨 약인지 물었지만 그냥 몸에 좋은 거니 먹어 하며

다섯 알을 손에 올려주고 난 털어 넣었지. 

그리고 놀랄만한 질문을 했는데

아주 태연한 말투로 그것과 대화가 가능하냐며 
예전부터 당연히 알고 있는 일이라는듯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길래 갑자기 짜증이 나서 쏘아붙였다. 


그렇게 잘 알면 직접 얘기해보라고

난 대화고 뭐고 그것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이제는 지난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차 기억 안 난다고 말이다 

북받혀오는 설움에 엉엉 울며

난 정말 그것이 무섭고 두렵다

언제고 그것이 날 죽일 거 같아서 잠을 잘 수도 없고 

스스로 죽기에는 난 아직 해보고 싶은게 너무 많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도 난 많이 살진 않았지만

남을 괴롭히거나 고의로 피해준 적 없고

바퀴벌레 빼고는 재미로 뭘 죽여본 적도 없다며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퍼부었다. 


사실 선월에게 화풀이 할 일은 아닌데 난 그냥 화만 내고 있었다. 


그러다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제정신이 돌아왔는데

민망해져 버려서 살짝 선월의 눈치를 보았다. 


계속 듣기만 하던 선월은 작은 눈을 치켜뜨며

할 말 다 끝났으면 이젠 내가 들을 차례라고 했다. 

오늘 밤 그것과 대화를 해서 그것이 비롯된 곳이

어딘지 알아야 한다고

그동안 충분히 내 양기를 먹었으니

사념 덩어리 같은 온전치 못한 그릇이 형체가 잡혔을 거라며

아마도 내 의식으로 대화하고자 한다면 
거절하진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계속 피한다면 빙의 같은걸로 육체를 얻고

이런 판타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양기만 쪽 빨려서

빈 껍데기로 죽을 거라고


그럼 구천을 떠돌 에너지조차 남지 않고 그냥 그게 끝이던지 

아니면 아귀처럼 다른 양기를 찾아 굶주리며

배회하던지 둘 중 하나 고르면 된다고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밤이 지나야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말고 시키는 데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선월과 얘기가 끝나고 잠시 같이 외출 좀 하자기에

간만에 집 밖에 나가 바람도 좀 쐴겸 나갔다. 


이것저것 장을 좀 보고 선월의 집으로 갔는데

여전히 역한 향냄새는 그대로 였다. 


선월은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질 않았는데

꽤 오래 비워둔 집 치고는 깨끗해서 신기했다. 


선월이 나왔고 집이 깨끗하다 하니 신당도 있고 해서

계속 방치할 수 없으니 아침마다 짬을 내서 손질하고 가곤 했다고

난 한낮이 되서야 일어나니 몰랐을 거라며 
별 탈 없이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나갔으니

아줌마한테는 이르지 마라 하며 능청스럽게 굴기에 
난 맨 입으로는 그럴 수 없다 했더니

농담도 하고 살만한가 보다고 해서 칫 하고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몸이 한결 가볍고 늘 짓누르던 피로도 없어서 그런지

머리가 맑고 개운한듯 했다. 

그런 선월도 평소와 달리 무뚝뚝하지도 않고

웃기도 해서 나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돈 벌 일도 못하고 그곳에 갇혀 내 뒤치닥거리만 해와서

비록 아줌마의 부탁이었다 해도 엄연히 내 문제이기에 늘 미안했거든.


볼 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날씨가 춥다며

옷도 사주고 붕어빵도 사주며 오빠같이 살뜰하게 챙겨주기에

예쁨 받지 못한 외동 딸로 살아와서 그런지 그런 배려에 
내 형제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감정도 잠시 싸늘한 밤공기가 귀 밑을 훑고 지나갔을 때

내 삶의 제 2의 시작점이 될  오늘 밤에 대한 생각이 숨이 가빠 오게 만들었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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