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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이야기

[공포] 이름을 지어서도, 불러서도, 존재하지도 않아야 할 것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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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냐며 어깨에 손을 올리던 선월이 날 보며 작게 말했다. 


널 지켜줄 사람들은 많다. 우.리.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코 끝으로 확 들어오는 찬기에 잠에서 살짝 깼다.

이불을 아무리 뒤집어써도 으슬으슬 떨리는 추위 때문에 
비몽사몽으로 가늘게 눈을 떴어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날 정도로 방 공기가 너무 싸늘했다. 


오늘 밤은 유난히 춥구나 아직 한겨울도 아닌데 이 정도로 춥다니

이번 겨울은 엄청 기려나 보다 하고 몸을 뒤척였는데

갑자기 침대가 으르렁대며 떨렸다. 

침대와 같이 내 몸도 떨렸는데 추위에 떠는 정도로

이 정도로 흔들리나 싶어 의아하던 차에 
점점 더 심해지는 진동에 놀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침대 귀퉁이 모서리에 서서 빤히 바라보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어

그것은 엷은 미소를 띠며 날 바라봤는데 언제부터 달려있던 건지

그 퀭한 구멍을 대신해 윤기 없는 바둑돌 같은 눈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흰자조차 없는 그 새카만 눈이 마치 연옥으로 가는 문 같았다 

매일 마주하는 것이겠지만 도통 그 두려움은 사그러들질 않았다.

오히려 더 공포감은 가중될뿐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왜 나여야만 하는지 어디에서 온 건지..

그것은 말없이 가만히 날 내려다 볼 뿐이였는데도 

중압감 같은게 느껴졌고 마지막 정신줄만 겨우 잡고 있을 뿐이였다. 
그것은 슬며시 손을 뻗었는데 가늘고 긴 그림자가 내 쪽으로 길게 늘어져왔다. 

이마에 순간 찬기가 스며들더니 극심한 추위가 온몸으로 퍼졌다. 
귀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점점 커지는 소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난 꿈을 꾸는건지 어딘가에 홀로 서 있을 뿐이었고

주위를 온통 둘러보아도 컴컴한 암흑뿐이었다. 


순간 달칵하는 소리 같은게 났는데

주위가 밝아지면서 보인건 예전 살던 반지하 집 방 안이였다. 

조심스럽게 어둠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자

이상하게도 내가 나온 곳은 장롱 안이였다. 


주방에서 달그닥 대는 소리가 나서 그쪽으로 가보았는데

믿기지 않게 그곳엔 엄마가 서있었다. 


엄마 언제 돌아온 거야? 나 지금까지 꿈을 꾼 걸까? 
혼란스러움을 잠시 뒤로하고


엄마!


하고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런데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엄마는 설거지를 멈추지 않았고

내 입에서 탄식이 나올 때쯤 현관으로 내가? 걸어 들어왔다.

내가...? 또 다른 내가 엄마에게 학교 다녀왔어 오늘 점심은 뭐야 하고 웃는데 


'우리 스레주 좋아하는 된장찌개'


하고 엄마가 방긋 웃었다. 


방에 들어온 나는


엄마! 장롱 새 거야!


라고 했는데 낯이 익는 광경이였다. 


그건 엄마가 집을 나가기 두 달 전쯤

보험 회사에 같이 다니던 팀장 아줌마네서 얻어온 장롱이였다. 

그때 엄마가 말하길 그 아줌마네 동생이 쓰던 장롱인데

산지 몇 달도 안되서 돌아가셨다고. 
지병이 있어서 계속 아파하셨는데 그분 남편이 이제껏

제대로 된 살림살이 한번 못 사봤다고 한탄하던 
아줌마 동생에게 선물한 장롱인데 얼마 쓰지도 못하고

돌아가셔서 보고 있으면 맘 아프다고 
버리겠다는걸 새 건데 아깝다고 엄마 생각이 나서 연락해서 줬다고 했었어. 

우리 집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쓰던 오래된 장롱이 있었는데

아빠라는 인간이 술 처먹고 열 받는다고 주먹으로 쾅 때려서

문이 푹 쪼개져 들어간걸 스티커 붙여서 몇 년째 쓰고 있었거든 


나는 너무 잘 됬다고 신나했는데 엄마가 그 집 아줌마가 담배를 많이 펴서

장롱이 닦아도 닦아도 누렇다고 나보고 좀 닦아놓으라고 해서

열심히 닦아대고 차곡차곡 이불과 몇 벌 안되는 옷을 예쁘게 개서 넣었다. 


그 상황이 그대로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

내가 겪었던 그 상황이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그래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게 꿈이란 걸 알쯤에도 그 상황의 나는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어 
좋은 장롱이라 서랍장에도 레일이 달려있어서 안 무겁게 잘 열린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는데 그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따끈한 밥상을 들고 들어온 엄마는 된장찌개에 조기를 찢어주며 


토요일인데 우리 단둘이 데이트하러 갔다 올까?


하곤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생생한지 
난 그 자리에서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다. 
난 아직 엄마품이 그리울 열네살 소녀였으니까.. 
스레주야! 하고 날 보고 밝게 웃어줬다

엄마는 과거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를 보고 ..스레주야! 스레주야!!!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눈 주위는 축축했고 내 눈앞엔 선월이 있었다. 
한참을 깨워도 안 일어나서 걱정했다며 꿀밤을 쥐어박았다.

나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하고 아주 크게...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선월은

꿀밤 때문에 내가 우는 줄 알고 연거푸 사과했다. 
하지만 내 통곡의 의미는 당연히 그게 아니였다.. 

아 보고 싶은 어머니..내 엄마!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너무 그립다. 
엄마! 하고 한번만 불러보았으면... 

나는 깨작깨작 밥알을 세고 있었다.

선월의 고집에 억지로 식탁에 앉았지만

아직도 그 감정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훌쩍거리고 있었으니까

밥을 먹는둥 마는둥 뒤적거리다 국만 두어번 떠먹곤 일어났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괜히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선월이 갈아낸 딸기를 주며 이모 모레 돌아오신다 하고 얘기를 꺼냈다.

이모라함은 아줌마를 말하는것 같아서 아 하고 짧게 대답했어 

잠시 우물쭈물 하더니 선월이 아줌마와의 첫대면을 말했는데

아줌마의 신병을 제일 먼저 안게 선월이라고 했다. 


선월은 십대에 신을 모셨는데 그쪽에서 꽤나 명성이 있었나보다.

다 죽어가는 동생을 위해 아줌마의 친정오빠가 선월을 데려왔고

신병을 고치고 집안을 세울려면 신내림을 받아라 하니 
아줌마가 욕을하며 선월을 내쫒았는데

선월은 아줌마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걱정이 많이 되었다고 

그렇게 그 집에 들락거리며 신내림을 종용하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해보고 별수를 다 써도 아줌마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지만

잦은 왕래로 정이 들었는지 친정오빠의 사례금 보다 더 많이 신경쓰고 
보살피고 하면서 지금까지 친구 역할로 오랜 시간 지내왔다고 


아줌마가 성격은 까칠하지만 한번 인연이 된 사람은 쉽게 보지않는다며 
논산에 간것도 장군 모시는 선월의 신어머니께 간거라고

그 의미를 알겠냐 내게 묻길래 난 앞서했던 말들도

이해를 못했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월은 아줌마가 그토록 증오하던 신내림을 나 때문에 받으러 가셨다고 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왜 하필 나 같은것 때문에

얼마나 안 사이라고 날 위해 그분이 희생하셔야 하냐니까 
그게 아줌마의 의지니 미안해 할 필요없다 그저 모르는척 하라고 했다. 


그런 사실을 알면 내가 당연히 거부할거니 비밀로 하라 하셨지만

선월은 내가 알고있는게 앞으로의 일에도 좋을거 같아 얘기했다 한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난 그 많은 일을 겪은것도 이런 빼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진것도 
어린 나에게는 견딜수 없는 시련같았다.


왠지 돌아오는 아줌마 얼굴을 똑바로 볼수 없을거 같아서 
하루하루가 지나 아줌마가 돌아올 날이 될때까지

신경을 너무 써서 설잠을 자야했고 
그것과의 사투로도 굉장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아줌마가 돌아왔다.


보자마자 이년아 잘 있었냐 하고 웃으며 볼을 잡아 당기는데

어쩔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신내림 받느라 힘들었는지 얼굴이 좀 푸석푸석해 보였지만

그 세파에 찌들은 얼굴이 뭔가 매끈하고 빛이 나는게 뭔가

고통이 덜어진 느낌이라 얼굴이 더 좋아진것 같았다. 


아마도 수년간 몸안의 것이 어지간히도 괴롭혔을테지. 
같이 지낸동안 이상한 행동 같은건 한번도 안보여줬지만

난 아줌마가 힘들어 한다는걸 느꼈으니까


아줌마는 혼자 온게 아니였다.

새하얀 백발을 쪽을 지고 연한 옥색 한복을 입은 노파와 
50대 중반 정도 되보이는 중년 여자와 함께였다.


선월이 어머니 오셨냐며 맨발로 뛰쳐나가 짐을 받고는 
팔을 끌어 집안으로 모셨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른이니 인사를 하려 앞에 가 섰는

 노파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요동쳤다.


아줌마는 쨉도 안될 정도의 중압감이였는데 
눈매가 번뜩이는게 마치 호랑이 같았고

백발까지 선해서 그런지 꼭 산신같은 느낌이랄까. 

어렵사리 인사를 했는데 나 같은건 하찮다는듯이 그냥 가버렸다.

선월은 자기가 더 무안했는지 애써 웃으며 


어머니가 좀 애들하고는 영 안친하셔서


하고 웃더니 귓속말로 저분이 아줌마와 자기의 신어머니라고 
장군을 몸에 담아 다니신다더니 포스가 진짜 남달랐다. 


중년 부인은 제자라고 했는데 같이 있는동안

단 한마디도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아마도 벙어리라 추측해 본다. 

아줌마는 뜬금없이 선월과 바람이나 좀 쐬고 오라고 했는데 
선월은 아무 질문없이 내 손을 잡고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그렇게 따라나가 다 저녁때 돌아왔는데 
현관을 열자마자 역한 향냄새가.. 선월에 집에 늘 가면 나던 냄새가 났다. 


킁킁 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날 보고 선월이 그랬다. 
아줌마 신당 때문이라고

그걸 도우려고 신어머니랑 두분 같이 오신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진짜 실감이 났다.

아줌마가 이제 무당이구나 정말 무당이 됬구나 하고..
아줌마 방에서 뭔가 시끌시끌 소리가 나더니 세분이 나오셨다.

편의상 신어머니는 장군 할머니 중년 여자는 제자라고 하겠다. 
장군 할머니와 제자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기도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채비를 하셨다. 


선월이 피곤한 아줌말 대신해 할머니들을 터미널까지 모셔 드리기로 했다. 
선월은 바로 집으로 갈거라며 짐을 챙겼고

그사이 할머니가 아줌마에게 당부 같은걸 하고 있었다.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현관에서 배웅하려 하니

갑자기 날 매섭게 돌아본 장군 할머니는 등짝을 쎄게 쳤다. 

순간 아픈 느낌보다 잠시 어질하더니 컥 소리와 함께 앞으로 코꾸라졌다.

제자는 날 일으켜 부축하였고 어리벙벙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어린것이 짠하다 나머지는 너희 몫이다 하고 돌아섰다. 


뭔진 몰라도 배웅 인사는 해야 할것같아 대문까지 쫒아가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 희안하게도 개들이 날보고 짖질 않았어.


그땐 그게 우연이라 생각했다. 

아줌마가 물 좀 달라 하기에 갔다주고 소파에 앉아서는

그동안 어땠냐 묻기에 그것에게 시달린 이야기부터 
꿈 얘기까지 빠짐없이 얘기했다.


그게 전부냐 혹시 꿈에서 그것을 보았냐 뭔가 미심쩍은건 없었냐 묻기에 
아니라고 했더니 순간 아줌마 눈이 번뜩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피곤하니 내일 얘기하자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긴장이 풀렸는지 잠이 쏟아져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아줌마의 말을 곱씹어 보았지만

난 도통 뭘 놓친건지 뭐가 잘못된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은 이 집에 온 후

두 번째로 그것에게 시달림을 당하지 않았다. 



5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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