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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빅토르 최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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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 교통사고 이야기.





1990년 8월 15일,


소련의 최고 인기 록 그룹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됩니다.



사고 얼마 전,


그룹 키노는 모스크바의 레닌 스타디움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에서

무려 6만여명 ( 비공식 집계 10만여명 )의 관객을 모아

최다 관객 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인기가 매우 높았습니다.

( 이 기록은 메탈리카에 의해 경신되었습니다. )



사건 하루 전,


빅토르 최는 당시 소련연방의 공화국이였던 '라트비아'의 

'리가'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다음 앨범 녹음을 마친 후

당시 레닌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그 )에서 다른 멤버들이

녹음을 마친 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고 당일,


빅토르 최는 평소 취미로 즐기던 낚시를 하기위해

승용차를 몰고 이동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빅토르 최가 운전하던 차는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버스와 정면충돌을 하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빅토르 최의 자동차는 버스의 밑에 깔려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빅토르의 자동차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빅토르 최 역시 사고 현장에서 즉사를 당했을 정도의 큰 사고였습니다.


소련 당국에서는 버스기사의 증언에 따라 

사고 원인을 빅토르 최의 과속 및 졸음운전이라고 사건을 종결지었지만,

당시 소련의 사건 결과 발표를 믿는 소련인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련의 대통령이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직접



"아무도 그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라고 애도 성명까지 냈을 정도니 말입니다.



소련인들의 사랑을 한 몸의 받던 최고 스타의

사망사고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관심과 빅토르 최의 명성에 비하면 

수사 상황은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당시 소련인들은 빅토르 최의 사망사고에 대한 

경찰 측의 수사 발표 내용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찰 측에서 발표한 사고원인 '과속 및 졸음운전'은 

오직 당시 사고가 났던 버스 기사의 증언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을 잘 살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직 버스기사의 증언만 듣고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버스기사가 본인의 과실을 피하고자

거짓 증언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했지만

경찰은 버스기사의 증언대로 수사를 마무리 지어버리게 되죠.


이에 당연히 소련에서는 버스기사에게 자세한 해명을 요구하였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버스기사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종적을 감춰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의문에 더해 당시 사고를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빅토르 최의 사망사고에대해 더 큰 의문을 증폭시키게 됩니다.


버스기사의 증언과 경찰 측의 발표와 달리,

당시 사고현장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빅토르 최는 신호를 준수하고 차선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버스가 반대 차선에서 빅토르 최의 자동차를 향해

갑자기 전속력으로 질주하였고,

빅토르 최가 경적을 울리며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빅토르 최의 차를 그대로 들이받아버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인해,

빅토르 최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빅토르 최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소련 당국에서

암살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을 하였고,

수차례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빅토르 최의 부인이였던 마리안나가

수차례나 시신 공개를 요구하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찰은 빅토르 최의 시신을

가족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은 그녀에게 오직

여권과 반지 그리고 그의 유품만을 건네줬을 뿐 입니다.



이러한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로 인해 

KGB에서 빅토르 최를 암살했다라는 암살설이 돌기도 했는데요,


1990년은 당시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 1991년 소련이 붕괴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


그와 더불어 현 CIS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 바람이 불어

소련 연방의 사회주의 종주국이라는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빅토르 최는 자유와 저항, 그리고 반전( 反戰 )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로 소련 사람들의 우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당시 보수파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눈엣가지일 뿐이였던 셈이죠.



그로 인해 보수파에서 KGB에 암살을 사주하여

빅토르 최를 암살한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인데요,



빅토르 최의 사망 시기도 묘하게 이상했습니다.


사고 당일 빅토르 최는 다음 앨범을 준비하던 중이였고,

그간 빅토르 최가 발표했던 앨범들로 보았을 때 

다음 앨범 역시 저항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앨범이 나오기 전에 암살을 시켜버린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실제 빅토르 최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라고 얘기를 하기도 했죠.



빅토르 최가 죽은지 17년이 지난 2007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빅토르 최를 협박했다는 한 남자의 제보가

언론사를 통해 공개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빅토르 최의 암살설이 더욱 증폭되었지만

경찰 측에서 제보자의 말은 신빙성이 없고 수사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재수사는 불가능하다며 함구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시 소련의 최고 인기 스타였던 빅토르 최의 죽음.


여러가지 의문점으로 인해 그의 죽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아직도 많은 러시아인들의 가슴속에는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러시아 문화] - 빅토르 최 이야기.

[러시아/러시아 문화] - Группа кров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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