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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이야기

[공포] 이름을 지어서도, 불러서도, 존재하지도 않아야 할 것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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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긴즉슨. 


내 몸에는 박순자와 이름 모를 남자 영가 둘이있는데

나만 빼고 모두 알고있었더라고.. 


아줌마나 선월 모두 처음부터 두 존재를 느꼈는데

보통 한 몸에 두 영가가 들어가면 세력다툼으로 사이가 아주 안좋은데

나같은 경우는 희안하게도 박순자가 돌아다니면

그놈이 아주 쥐 죽은듯이 가만히 있었는데 기운이 느껴지기에는

표면상 박순자가 쎄보여도 알짜배기로 힘을 축적하고 있던건 그놈이라고 했어. 


마치 박순자를 조정하면서 나쁜건 박순자한테 다 시키고

자기 혼자 실속은 다 차리는듯한 


마치 자기는 눈에 띄면 큰일이라도 나는듯이

아줌마와 선월이 오면 멀리 피해있다가

뭔가 불리해질라 치면 박순자를 방패삼아 나오고 그랬다며


아마도 내가 제일 처음 조우한게 그놈이고 
계속 그놈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가

이 집에 와서 눈에 띄게 박순자가 돌아다닌 거라고 얘기했어. 


뒤죽박죽이라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되는데 
결론은 내 몸속에는 박순자 혼자가 아니라

그놈이랑 두마리가 같이 있다는거잖냐고 하니 맞다고 했어 


이제껏 이야기를 안한건 그놈이 설치고 다닐 만큼이 되어야 떼어내기도 쉽다고 
일부러 서울까지 와서 그놈을 끄집어 낸거라고 내가 이 집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그놈이 이곳에서 완전히 정체를 들어낸데에는 뭔가 확실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했어.


우리에겐 박순자에 대한 실마리 뿐이였고 
그놈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까 이제부터 찾아야 한다고 했지. 


박순자는 날 괴롭히는 횟수에 비해 힘이 너무 없고 그놈은 갈수록 기세가 등등해져서 
아마도 박순자는 그것에게 뭔가 매여있는게 있다고 지금 알수있는건 그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대충 끝나고 아저씨와 오빠가 들어왔다.

오빠는 뻘쭘한 표정으로 어제 일에 대해 사과했고 나는 못들은척 그냥 넘겨버렸다. 


둘이서 무슨 말이 있었는진 몰라도 그 오빠는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 하는 표정이였어. 
불현듯 아줌마가 그 오빠 손을 붙잡고 나지막히 이야기 했어. 


너도 편하진 않았겠구나 하면서 어깨를 툭툭 두번 털어주는데

내 눈에 뭔가 희미한 연기 같은게 보였다. 

굿은 이 집에서 안할거라고 얘기 했어.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어짜피 이 집에서 굿 할 필요는 전혀 없었고 
그저 와 본 것 뿐이라고 박순자와 그놈 모두가 이곳에 연관이 되있으니까

당연히 와야 했던것 뿐이고 생각외로 이곳에서 뜻밖의 단서가 있다고 했다. 

장군 할머니가 오빠를 물끄러미 쳐다봤는데

오빠가 그 기세에 눌렸는지 주눅이 든것 같았어. 
장군 할머니가 너는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이 분란을 일으키냐 라고 말했어.

그 오빠는 영문도 모르고 혼이 나니 얼이 빠졌는데

장군 할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혀를 쯧쯧 찼어. 


아저씨가 장군 할머니에게 무슨 뜻이냐고 거듭 묻고 또 묻자

한참만에 할머니가 대답을 했다. 

니놈이 다 달고 와서 니 에미도 죽고 집안이 쑥대밭이 됬구만

한놈도 아니고 두놈 세놈 집구석이 사람의 집인지 귀신의 집인지 알수가 없다


라고 호통쳤어.


나와 아저씨 그 오빠 셋은 입이 떡 벌어졌지 
그건 또 뭔 소린가 싶어서 아줌마와 선월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였고

뭔 말인지 물을려고 하니 시간 없으니 빨리 일어나자 라고 하고 휭 하니 나가버렸다. 


일행들이 다 나가고 나와 오빠 아저씨 세명만 반쯤 넋이 나가서

주섬주섬 일어나는데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어. 


벙어리 아줌마가 회색 봉고차를 끌고 집 앞에다 댔고

우리는 다 그 차에 타서 이동했다. 

한 30분쯤 달린것 같았는데

서울 근교에 이런 시골같은 곳이 있었나 싶은게

꾸불꾸불한 도로를 계속 가더니 커다란 간판으로

굿당이라고 써있는 곳에 도착해서 내렸다.


벙어리 아줌마는 능숙하게 차를 주차하곤 
우리를 따라왔는데 굿당이라고 해서 난 엄청 쌀벌한 곳일줄 알았는데

그냥 시골집 같이 생겼다. 


그 집 마당에는 엄청나게 큰 아름드리 나무가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러운게 아마 계절탓도 있겠지만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회색빛 나무가 아주 흉물스럽게 생겼었어. 


한참 그 나무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장군할머니가 뭘 넋놓고 있냐며 호통을 쳐서

죄송하다 하고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있었고 아줌마와 할머니 선월은 다른 방으로 가서는 
한참후에 선월만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오빠보고 들어오라고 손짓 했어


오빠는 쭈삣쭈삣 하더니 아저씨가 고개짓을 하자 그제서야 들어갔어.

방에서 말소리 같은게 들리더니 우당탕탕 소란이 났다. 


아저씨가 놀라서 방 문을 열려고 하니까 방 문이 잠겨서는 열리지 않았고 
계속 그 오빠의 이름을 부르면서 괜찮냐고만 소리쳤어.


아저씨가 문을 부술듯이 치자 가만히 앉아있던 벙어리 아줌마가

아저씨 등을 툭 치며 시끄러우니 잠자코 있으라고 했어.


순간 난 그쪽으로 쳐다보며 


아줌마 벙어리 아니네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 아줌마는 씩 웃으며


쓸데없는 말 하려고 달린 입이 아니니까


라고 짤막하게 얘기하고는 다시 앉아있었다.


아저씨는 계속 얼굴이 하얘져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후 방 문이 빼곡 열리더니 얼굴에 온통 땀범벅을 한 오빠가 나왔다. 

쓰러지듯이 자리에 앉아서는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호들갑을 떨며 괜찮냐 무슨 일이냐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선월이 뒤늦게 나오자 아저씨는 또 선월에게 매달려서 
무슨 일이냐 하니 세분이 쪼로록 나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어. 

그 집에는 귀신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오빠의 어깨 위에 늘 붙어다니고

하나는 안방에서 아주 눌러있는데 아직까지 큰 해는 안끼치고 살았나보다 라고 했어.


그중에 하나가 방에서 튀어나와서 소란을 피고 도망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세분이 꾹 누르고 있어서 도망도 못가고 쭉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네들은 친구라고

원래 셋이였는데 한놈이 나가버려서 그동안 쭉 둘이였다고

따로 해끼치지도 않았고 있는듯 없는듯 잘 있었는데

왜 자기들을 내쯪으려고 하냐고 사정 하더란다.


그래서 아줌마가 니들 셋이 박순자 죽이지 않았냐라고 하니

펄쩍 뛰면서 우리는 아니라고 자기들은 그저 이곳에서 머물고 싶었을 뿐인데

셋중 하나 나가버린 놈이 원래 죽기 전부터도 성질이 고약하고

못됬었다고 그놈이 수 쓴거라며 핑계를 대더란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어렸을때부터 친구였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트럭에 받혀서 셋다 그자리에서 죽었다고

그렇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흉가에 자리 잡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맛있는 냄새가 나서 간곳에 이 집 오빠가 있었다고 했어. 


친구들이랑 담력시험 한다며 귀신을 부를거라고 쑈를 했는데

나름 상차림도 하고 아주 몸에 씌여주길 바라는듯이 무방비 상태였다고 했어.

 
셋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고 술에 취해

헤롱거리는 오빠 몸에 셋이 꾸물꾸물 들어가서 왔다고. 


그 말을 하던중 오빠가 멈칫하더니 그맘때 일정이 더 남았었는데

몸이 너무 무겁고 아파서 자기 혼자 먼저 집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했어. 

아저씨는 그런 얘길 첨 들었는지 깜짝 놀란 눈치였고

오빠는 많이 놀랐는지 몸을 가끔 떨 뿐이였다. 


우린 아무말 없이 한참을 앉아있었는데

장군할머니가 내일 밤에 시작 해야겠다 한마디 하시니 모두가 끄덕였어. 


내가


굿이요?


하니 선월이 고개를 까딱했다.


아저씨네에 붙어있는 귀신들은 세가 약해서 크게 걱정 안해도

떨어져 나갈거라며 천도굿으로 원한 없이 보내주겠다고 했어. 


그동안 먹고 싶은거 세상구경 다 했으니 크게 미련같지 않아도 되지않겠냐며

오빨 보고 씨익 웃으니 오빠는 왠지 고갤 푹 내렸어


아마도 오빠에게 붙어있는 놈중 하나에게 하는 말이였을거라고 생각했다. 


할 일이 많았는지 그날 밤부터 준비가 시작 되었는데

나나 아저씨 가족은 별 도움이 안되서 각자 방에 들어가 쉬기로 했어.


내일 있을 의식때문에 체력도 비축해둘겸이니 미안해 하지말고 쉬라길래 
들어오긴 했지만 영 신경쓰이고 잠이 쉬 들지않았어. 


밖은 뭔갈 옮기는 소리 뚝딱거리는 소리 놋그릇 부딪히는 소리 등

부산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거 같더니 잠이 스륵 오더라. 


가수면 상태? 라고 하나

잠은 자고있는데 모든 감각이 살아있는 느낌.

불쾌한 느낌은 아닌거보니 가위는 아닌것 같은데

잠을 자고 있는거 같은데도 눈과 귀가 열려있는 상태였어. 


보통 그런 경우엔 몸이 안움직여 지는데 희안하게도 손과 발이 꿈틀댈수가 있더라고

그게 뭐라고 신기했던지 난 손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서 손가락을 한개 움직이면

두번째를 움직이고 해서 한손을 잼잼 할수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창문에서 써늘한 바람이 휙 들어오더니 얇은 면 커텐이 펄럭.. 
자연히 그쪽으로 시선이 따라가게 됬는데 면 커튼 사이로 희미한 형상이 보였다. 

순간 느낌이 좋지않아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는데

손만 겨우 움직인터라 몸은 못에 박힌양 꿈쩍도 하지않았어. 


입에서 으으으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는데

다시 시선을 돌리니 커튼쪽엔 아무것도 없는게 아닌가.. 


헛걸봤구나 하고 마저 이 가수면 상태를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한 후

반대편 손을 움직이려고 얼굴을 돌리는 순간 


긴 치마단이 손끝에서 보이는게 아니겠어?..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는데 그자리 그대로 치마단이 있었다. 


치마단은 공중에서 약 10센티 정도 떠있었는데

그정도 틈이면 발이 보여야 하는데 없었다.

사람 심리가 참으로 고약한게

무서움을 느끼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아 상황을 피하려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굳이 안봐도 되는걸 보려고 하더라.. 


공포영화에서도 꼭 안봤으면 될걸

꼭 궁금해서 봤다가 명을 단축 시키는걸 보면서 멍청하다고 했는데.. 


나도 역시 그 바보중 하나였어.

치마단을 따라 시선이 쭈욱 올라갔는데 날 내려다보는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외상으로 더럽혀진 얼굴은 아니라 비교적 깨끗하게 볼만했다. 

늘 내앞에 나타나던 존재는 심연의 구덩이 같은 뻥 뚫린 두 눈 너덜거리는

살점 지독한 냄새를 동반하거나 내 기를 빨고 형체가 잡힌 모습이였어도

늘 흉측한 모습 그대로였는데 이번엔 뭔가 다른듯 했어. 


이곳에 있는 지박령인가?


생각한 순간 그것이 곧 부서질것 같은 입을 떼어 얘기했어. 


"하지마. 다 죽을거야 하지마" 


다짜고짜 뭘 하지마란거야 생각하는데 얼굴이 많이 낯이 익는거야.

목소리도 어디서 들은것 같았는데 순간 그게 박순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심호흡을 크게 쉬고 입술에 감각을 모아 
한자한자 또박또박 이야기 했어.

마치 재활이라도 하는듯 힘들었지만 말이다.. 

박순자가 맞냐고 물으니 그것은 날 내려다 본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어.

묻고싶은게 많아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머릿속이 정리가 되질 않았는데


박순자가 다시 얘기했다. 


"멈춰. 도망가. 나오면 다 죽을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날 가르키고 방 문이 스르륵 열렸는데 
오빠와 아저씨가 묵는 방쪽으로 손가락이 향했어.

순간 굉장히 슬픈 얼굴로 변했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나와 오빠가 다친다는거냐


묻자. 짧게


"죽어"


라고 얘기했다. 


어째서 우리가 죽냐


고 하니


그놈을 건들이면 다 죽을수 밖에 없다


라는 말만 하고는 미끄러지듯 방 문 앞에 섰어. 

마치 뭔가에 갇힌것처럼 더 나아가질 못했는데 굉장히 슬픈 뒷모습이였다. 


날 괴롭혔던 그 미움은 어디로 가고

내가 그리워했던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동정심이 샘솟았는데 
순간 몸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더니 온 몸이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어. 


몸을 일으켰는데 몸이 굉장히 가벼운 느낌이라 날아갈것만 같았는데

그녀뒤로 선 내 발끝이 사뿐해서 신기해 이리저리 몸을 돌려본 순간


난 충격을 먹었다.


내가 그대로 자리에 누워있었으니까... 


당황한 나는 그게 유체이탈 이라는걸 알았지만

다시 들어갈 방법을 몰라서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순간 내 몸으로 박순자가 빨려 들어갔다.


뒷통수를 쎄게 맞은 느낌으로 당했다!


하고 느끼는 순간 


누워있던 내 눈이 번쩍 떠지더니 일어나는게 아닌가. 


내 몸을 돌려달라 소리쳤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듯

무표정으로 일어나 자연스레 방 문을 나갔다. 

난 쫒아가고 싶었지만

박순자처럼 뭔가가 막고 있는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어. 


내 몸을 뺏겼다는게 충격이였지만

내 영혼이 이방에 갇혀 있다는것도 굉장히 미칠거 같았다. 


머릿속엔 난 이제 어찌되는건가 선월은 날 알아보겠지?

유령인 날 알아보겠지 하며 별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아저씨네 방 문이 삐걱 열렸어.


이상하게도 마당쪽에 사람들이 있어서 불빛이 있을텐데도 
매우 컴컴했고 어스륵한 달빛만 들어올뿐이였다. 

심지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거든

그 부산한 소리는 커녕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방에 들어간 내 몸

그러니까 박순자는 한참을 누워있는

오빠와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봤어.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바닥으로 내리더니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는게 보였다. 

한참을 어루만지고 훌쩍훌쩍 우는거 같더니

아저씨 쪽으로 가서 손을 부여잡는거 같았어 


이윽고 고개를 떨구더니 펑펑 우는게 아니겠어.


그정도로 우는데 두사람이 깨지않는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순간이라도 내 몸을 뺏긴걸 잊을 정도였어

그 오열은 내 평생 두번 다시 못볼 보고있는 나까지 
자연스레 눈물이 떨어질거 같은 슬픔이였다.


그 울음 소리는 내 몸에서 나왔지만 내것이 아니였어. 
그러더니 두사람의 이부자리를 매만져주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고맙다는듯 눈 인사를 하고 내 몸에서 빠져나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몸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났어 


그리고 눈을 떴는데 꿈인지 현재인지 분간이 안가서

박차고 방 문을 열고 나갔는데 바깥은 아까처럼 부산함 자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꿈이였구나 하고 있는데 입에서 짠맛이 났어. 
거울을 보니 눈과 입이 엄청 흉하게 퉁퉁 부어있었는데

진짜 내 몸으로 박순자가 울었던건가 싶었다.


그게 진짜였다면 꿈이 아니였다면

난 진짜 그렇게 몸을 뺏길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에 온 몸에 소름이 다 돋았다. 

난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붉은빛의 가로등과 마당으로 연결 되어진 백열등 여러개가

빨래줄에 걸쳐져 낮처럼 환했다.


그에 대조 되는듯 나무로 무성한 굿당 주위는

칠흙같은 어둠이여서 더 으스스 했던거 같다.


마당에 있던 흰 고목 앞에 큰상이 하나 놓여있었고

바깥에 딸린 구식 부엌에서는 상차림 준비가 한참이였다. 


왠지 아줌마와 선월은 보이지 않고 장군할머니 일행만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던중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어

깜짝 놀란채 뒤를 돌아보았더니 선월이였다.

선월은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뜨며 웃더니 안자고 왜 나왔냐고 물었다. 
난 아까 전에 겪었던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 했고

선월은 왠지 놀라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담담히 듣기만 했다.


내 이야기가 다 끝난후엔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 나누듯이


그랬구나 알겠다 하고는 별일 없을테니 이만 들어가 자거라 했다


선월이 그렇게 말하는게 이상했지만 그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는거 보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는게 선월은 나에게 그저 큰 믿음 그 자체였나 보다. 
왠지 아까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 나서 눈을 떳을땐 다음날 아침이였다. 
밥 먹으라는 소리와 함께 선월과 거실로 나가자 벌써 모두가 일어나서 식사준비 였다. 


다들 자리에 앉자마자 부산히 밥을 먹었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와 오빠네 일행 외에 의식을 돕는 여럿이 더 자리에 함께 했고 
그중에 북을 치는 새치 가득한 나이 좀 있어보이는 아저씨는 내가 나오자 


에구 어린것이 고생이 많구나 하며 혀를 쯧쯧찼다.

장군 할머니는 눈을 흘기며 입방정 떤다는 표정으로 쏘아봤고

아저씨는 겸연쩍어 하며 마저 숟가락질을 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다과가 나오자 아줌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가을이니 해가 금방 떨어진다며 해 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니

준비는 다됬고 1시간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얘기했어.


나를 쳐다보는 아줌마의 눈빛이 잠시 일렁이는거 같더니 


식이 시작되면 많이 힘들꺼라며 시키는데로만 집중 잘하면

큰일은 없을거니 안심하라고 했다. 


안도하라는 말이였겠지만 난 무척 긴장했고

벙어린줄 알았던 제자아줌마에게 이끌려 방에 들어갔다.


입으라 하길래 주섬주섬 입고 있는데

국민학교 2학년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때 엄마 몰래 
남은 소복 줏어입다 혼난 기억이 나서 피식 웃었더니


제자 아줌마가 웃는거 보니 
이제 제법 강심장이 된거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난 아줌마도 말 못하는 벙어린줄 알았더니

말도 잘하신다며 말대꾸를 했다. 


아줌마는 피식 웃는걸로 대답을 대신했고

옷 매무새를 잡아주면서 나지막히 속삭였다. 


행여 네 몸에서 벗어나게 되거든 멀리 떨어지지말고

손이라도 붙잡고 있으라고 했다. 

당황하다가 그자리를 벗어나게 되서 영영 못돌아올지 모를거라면서 말이다. 


아마도 어제 겪었던 유체이탈을 얘기 하는것만 같아 마른침이 삼켜졌다.

뭔가를 더 얘기하려다 됬다며 그냥 휭 나가버리는 아줌마가

좀 찝찝했지만 바쁘니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늙은 고목에 티브이서나 보던 서낭당처럼 오색 띠가 매달려 있었고

각종 무구와 돼지머리를 비롯한 음식이 가득한 큰상에 북이며 꽹가리 등

악기를 들고 큰 멍석에 하나둘씩 앉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장통처럼 정신이 한개도 없었는데 집에서 화려하게 치장을 한 아줌마가 나왔다. 

가뜩이나 매섭게 생긴 눈초리가 진한 화장을 해서 그런지

더 날카롭게 생겼고 요상한 꿩깃털을 꼽은 모자에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몇겹씩 입은것 같았다.


아줌마의 얼굴도 그닥 평화로워 보이진 않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더니 장군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선월과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런 아줌마를 넋을 잃고 봤는데 
그런 우리를 봤는지 아닌지 눈길 한번 주지않고 너른 마당으로 나섰다. 


잠시후 모든 준비가 다 끝났는지 서있던 아저씨와 오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오빠를 불러세웠다. 


예상보단 담담하게 그곳으로 불려나간 오빠는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참고 있는듯 했다. 


오빠는 죄인같이 멍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아저씨는 불안함에 어쩔줄을 몰라했다. 


아줌마의 헛기침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에 식이 시작된듯 하다

뭐라뭐라 알쏭한 주문처럼 한참 뭔가 말을 하는데

대충 듣기로는 아줌마 몸에 있는 조상님을 불러내는듯 했다. 


한손에는 무구를 쥐고 다른 한손에는 버드나무 같은걸 쥐고 있었는데

그걸 높이 쳐들자 북치는 소리가 둥둥둥 울렸다.


북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갑자기 급사해 죽었다던 그 두남자를 부르는듯 했다 

아줌마가 불러낸 두 남자 중 한남자가 몸에 들린듯 했다.

그는 연신 아퍼 아퍼 이랬는데 아프다고 할때마다 부들부들 떨었다.


너는 누구냐 하니 이름석자를 이야기 했는데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죽었다고 했다. 


자기는 머리가 깨져서 바로 죽었는데

본드를 불고 술을 먹고 달리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죽었다고 했다. 


선월이 물었다


어찌하여 구천을 떠도는 것이냐 본디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 할 것 아니냐


하니 


처음에 붙어 온 오빠한테서 장난 좀 치고 가려했는데

젊은놈 몸 안에 있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눌러앉기로 했단다.


학교도 가고 살아생전 좋아하던 술도 먹고

너무 재밌었다고 
이젠 가도 좋다고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줌마 몸에서 나갔는지 부르르 떠는 사이 
북소리가 몇번인가 둥둥 거렸고 이내 하나가 더 들어온듯 했다. 


그 남자는 첫번째 남자와 달리 불만이 많았다

 들어오자 마자 소리를 계속 질러댔는데 목이 아프다고 했다. 


맨뒤에 타 있어서 멀리 날아가서 죽으며 목이 부러졌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아줌마 목이 덜렁덜렁 거리는듯 덜컥 거렸는데

모습이 너무 기괴해서 소름이 다 끼쳤다. 


불만 많던 그 남자는 아직 해보고 싶은게 많은데 왜 가야하냐며 안가겠다고 버티니 
선월이 너희때문에 박순자도 죽고 가정이 파탄 났는데

구천을 떠돌 생각을 아직도 하는 것이냐며 
호통을 치니 나는 아니야 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자기는 박순자 죽음에 관여가 없다고 하더니

이름 석자를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되뇌였다. 


그 이름이 나머지 하나의 이름이냐 물으니 

자기 딱 멈추고 히히 거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웃는 소리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림이 커서 내 속이 너무 메스꺼웠다. 


오빠는 그런 모습을 보며 덜덜 떨고 있는것이 보였고

아저씨는 눈을 질끈 감고 앉아있었다. 


선월은 웃는 소리에 개의치 않고 계속 큰소리로 질문을 했다.

그놈이 박순자를 죽인것이냐 하니 그 남자는 나는 몰라 나는 몰라 하며 이죽거렸고

이내 몸에서 튕겨져 나간듯 했다.


아줌마가 돌아왔는지 헛기침을 두번하고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때부터 그 두 남자를 위한 의식이 시작됬다.


아줌마는 빠른 말로 한남자씩 이름을 부르며

갑자기 오빠의 어깨를 버드나무로 내리쳤는데 오빠가 휘청거리는게 보였다.


그리고 또 한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버드나무로 오빠의 남은 한쪽 어깨를 쳐냈더니 오빠가 휙 쓰러지더라.


아저씨는 어깨를 부축해 자리에 뉘였고 아줌마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주문같은 말을 계속 읇조리며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었다. 


아저씨도 같이 두손을 비비벼 기도를 했고 그렇게 그 두남자는 간듯했다. 


두시간 가까이 그런 행위를 해서 그런지 아줌마는 무척 지쳐보였다. 


그런데도 물 한모금 들이키지 않고 정성을 다 하는것 같았다. 
귀신이긴 해도 젊어 객사를 당하고 구천을 떠도는게

안쓰러워서 였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끝이 나는지 알았는데 그렇게 하고도 뭔가 의식이 굉장히 길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 끝이 난게 아니였는지

아줌마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몸과 팔을 흔들어 댔다.


북과 꽹가리 소리가 점점 커지고 굉음을 내는 순간

아줌마의 입에서 박순자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가슴이 쿵쾅 거렸는데

뭔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앞으로 힘없이 고꾸라졌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서 일어나질 못하겠는데

선월이 다가와서 날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앞이 흐릿하고 뿌얘서 비틀거리며 어찌저찌 일어섰는데

불호령 같은 노파의 음성이 아줌마의 입에서 터져나왔고 
박순자의 이름을 다시 한번 외치자 내 몸이 갑자기 꼿꼿이 섰다.


난 몸에 힘을 하나도 주지 않았는데 막대기 처럼 뻣뻣이 서있는게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 몸을 내려다 봤는데 내가 발끝으로 서있는게 보였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난 발레도 하지 않았는데
발끝에 체중을 실어서 설 수 있다는게 가당치도 않으니
내 입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그것은 내 울음 소리가 아니였다.


중년 여자의 울음 소리 박순자의 울음 소리였다.


그 당시 내 몸은 나와 박순자를 둘다 담아 이야기 할수가 있었던것 같다.


나이자 동시에 박순자라고 하는게 맞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그것은 박순자이고
나는 내 의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이야기 하고 있었으니까.


그 느낌은 지금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글로 푸는건 위 설명이 고작이고 표현력이 부족해서인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9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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