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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이야기

[공포] 이름을 지어서도, 불러서도, 존재하지도 않아야 할 것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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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선월은 커다란 돼지를 한마리 데려왔다. 
왠 돼지인가 했는데 꿈에서 박순자가 말했던 그 돼지 때문인듯 했어.


그게 뭔가 도움이 됐을 것이 분명하니

장군 할머니가 선월에게 심부름을 시켰을 거라는

오빠의 얘기대로 그 가엾은 돼지는 다음날 명을 달리했다.


선월이 곳곳에 못질해놓은 부적과 새끼줄 사이로

지난번 보다는 조금 협소한 상차림이 마련됬다.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멍석을 한겹 더 깔고는

묶어둔 돼지를 올려놓고 그 옆에 내가 앉았다.


아줌마는 화려한 차림은 벗어두고 아주 수수한 감복을 입고 나왔고
할머니는 백발과 잘 어울리는 하얀 두루마기 같은 옷을 걸치고 나란히 섰는데 
장군 할머니의 모습이 흡사 신선 같았다.

얼마가 지났는진 모르겠지만 꽤 오래 그렇게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더듬는 사이 갑자기 뜨거운 뭔가가

아랫배에서부터 목구멍까지 한번에 쑤욱 올라와서 탁 걸리더니

우웩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갈 토해냈다.


구토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세상이 환해지고

아까와처럼 다시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눈을 제대로 뜨곤 토해 낸 자리를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옆을 보았는데 시커먼 털뭉치 같은 것이

내 옆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어서 깜짝 놀라 넘어졌다.


넘어짐과 동시에 그 털뭉치가 내 몸쪽으로 순간 날아들어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는데 텅 하는 둔탁한 느낌이 나더니

나와 털뭉치가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나는 가슴을 맞아 켁켁 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 털뭉치는 그대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 다시 내쪽으로 날라들었다.


방금 전처럼 똑같이 튕겨지곤

약이 오른것 처럼 털뭉치가 푸르르 떨더니 
이내 크게 변했다.


얼마 전 의식에서 내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을때 보였던

검은 연기 같은 아우라가 그 털뭉치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갑자기 엄청난 크기로 커지는걸 보았다.

둥둥 북소리가 나고 아줌마가

워밍업식으로 천천히 방울을 흔들며 뛰기 시작했다.


방울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무구 소리들이 요란해지니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가슴이 빨리 뛰고 귀가 멍하더니 몽롱해지는 것 같았어.


머릿속에서 삐이ㅡ 하는 소리가 나고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걱정스러운 모습의 선월이 흐릿하게 보일 때쯤 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흡사 불덩이가 내 몸안을 휘젖는 느낌이였는데

주위에 그 요란한 굿의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내 머릿속은 고요했고 온 몸은 용암을 삼킨듯 점점 타들어가서 괴로운데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눈 앞에 뿌얀 무언가가 내 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는데

형체는 아줌마인듯 했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뭐라고 하는지

입을 뻥긋거리는걸 보려고 애를 써도 전혀 알수없을 지경이 되서 포기했다.


그건 크기가 커진 것이 아니라

몸을 찌그러트리고 있다가 몸을 피면 몸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맞았다.


털뭉치가 몸을 쭈욱 필 때마다

시커먼 연기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는데 지독한 악취와 함께였다.


나는 그 익숙한 냄새로 내 몸에 기생하는 그것임을 확신했다.


그것과 조우하는 순간

그동안의 다짐이 다 무너져 내리는 공포로 덜덜 떨 뿐이였다.


머릿속엔 온통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였지만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그것이 다시 나에게로 돌진해왔고

나는 무기력하게 그것에게 내 몸을 내주게 되었는데

쑤욱 하며 혼이 밀려나가는것 같더니 이내 몸으로 다시 돌아왔다.


새끼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장군 할머니가 손가락에 해준 붉은 매듭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매듭이 뭔가 제대로 역할을 한게 아닐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것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씩씩 거리더니

털뭉치 사이로 뻘건 눈알을 드러냈다.


그것인지 박순자인지 모르겠지만

그전에 몇번씩이나 봤을때는 구멍이 뻥 뚫렸거나
줄줄 흐르도록 문드러진 모습이였는데

그렇게 소름 끼치도록 뻘건 빛이 나는 눈은 처음 보는 것이였다.


희번득거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그륵대는 목소리로 크게


'죽인다'


라고 소리치며 다시 달려들었다.


순간 쩡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빛이 번쩍하더니

그것이 순간적으로 피하는 것이 보였는데 그것은 빠른 속도로

이곳저곳을 날아들더니 고개를 180도로 꺾어 뒤를 돌아본 순간 사라졌다.

사라진 그곳에는 가지런히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아줌마가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것과 나만이 그 공간안에 있었던거 같은데

내가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였다.


감각이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것은

그 당시에 제자리로 다 돌아온듯 했다.


아줌마는 숨도 쉬지 않는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런 아줌마를 뒤에서 장군 할머니가 내려다 보고 서서

가만히 계실 뿐이여서 난 마음이 다급해져 
아줌마를 도와야 한다고 소리치려 한 순간


그 찰나 아줌마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줌마의 눈은 붉은빛으로 번뜩였고

나는 그것이 아줌마에게 붙었다는걸 직감했다.


뭔가 잘못됬다 생각에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아줌마가 아니 그것이 스윽 일어나서는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한발. 목을 잠시 비틀더니 또 한발을 내딛고는
기름칠 하지않은 로봇의 머리가 돌아가듯 까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아줌마의 머리가 돌아갔다. 


머리가 향한 곳은 장군 할머니 쪽이였다.


아줌마의 몸인데도 그렇게 정 반대로 목이 돌아간다면 아줌마는 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오금이 저렸다. 


장군 할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아주 침착하고 평온한 표정이셨는데
눈가에 번뜩이는 안광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그것이 장군 할머니를 바라보고는

가래끓는 목소리로 큭큭 거리더니


"할매가 안되니 영감이 나왔네?"


하며 이죽 거렸다. 

장군 할머니의 눈썹이 잠시 씰룩 거렸지만

아무 일도 없듯 조용히 입을 떼셨다.


"네 이놈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것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잡귀 놈이 분명하구나"


라고 하자 그것이 여전히 이죽거리는 말투로 장군 할머니를 계속 조롱했다.

침착함을 잃지 않고 천천히 그것에게


'도대체 무슨 원한으로 이런짓을 하느냐'


라고 물으셨는데
그것의 대답은 아주 예상밖으로의 황당한 대답이였다.


"재밌어서."


장군 할머니의 눈이 번뜩였는데

아주 화가 많이 난듯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것이 자랑스러운냥 이야기를 했는데


시초는 박순자의 아들,

즉 오빠였고 오빠를 따라 앞서 간 친구들과 셋이
집에 왔는데 마침 집에는 박순자가 마련해놓은 귀신 상이 있었다고 했다.


그 상은 박순자가 내 집 마련을 하고 나서

어디서 줏어들은 풍월로 터주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거라며

상을 차렸는데 그것이 제대로 정성을 올리는 상이 아니라

잡귀들 먹고 가는 상차림처럼 허술함에 터주신에게 인사는 커녕

오히려 화만 불러 일으켜 객귀가 셋이나 왔는데도 쫒지않고 그냥 놔둔 모양이였다.


그 귀신상에 배불리 먹고 그 집 안방 눌러서 신나게 노니

평소 기가 약한 박순자는 급살을 맞아 죽었다고 이야기하며

연신 키득대는데 갑자기 아줌마의 얼굴에 심한 경련이 일더니 흉하게 일그러졌다.


뭔가 계속 싸우는듯 몸이 계속 뒤틀리며 심하게 괴로워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괴로움에 몸부림 치던 아줌마의 몸이 갑자기

허리가 딱 꺾이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어깨가 조금씩 들썩 거리더니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알수없는 상황에 혼란스럽기 시작했는데

울음을 훌쩍 거리는 아줌마에게 장군 할머니가 나지막히 
박순자의 이름을 부르니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것과 싸워서 박순자가 몸으로 나온 모양이였는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줌마의 눈은 붉은빛이 아닌 잿빛으로 변했는데 그것이 박순자라 확신했다.


박순자가 제일 먼저 이야기 한 것은 '도와달라' 였다.


그러면서 그것의 뒤를 이은 이야기를 더 했는데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괴로운 표정이 왔다갔다 하는게
그것에게 방해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긴즉슨 본인이 급살을 맞아 죽고 그 억울한 한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안방에 그놈들 셋이 있어서 그 등쌀에 못이겨 쫒겨나

문 앞에서 며칠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중의 한 놈 손발이 양쪽 다 없고

가슴이 다 찢긴 흉악하게 생긴것 하나가 다가오더니

집에 머무는 조건으로 시키는데로 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구천을 떠도는 것도 모자라 그런 악한 놈들에게 당할수는 없어

몇번이나 노력했지만 힘이 없는 박순자는 번번히 실패했고

문밖을 나서는 아들의 모습은 어깨에 머리가 덜렁대거나 으깨어진 놈들이
붙어 나가는걸 보곤 했는데 억장이 무너져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 갈수록 초췌해지는 남편의 모습까지 볼때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마음이였고 그럴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고

결국은 그것에게 굴복하고 집안 한구석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곳이 장롱 한구석에 있는 아들의 선물 즉 열쇠고리였다고 했다.


그것은 야망같은게 있었는데

구천을 떠도는 것도 성불하는 것도 싫고 생전처럼 육체를 가지길 원했다고 한다.


힘을 키우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했는데

손발이 없어 박순자를 시켜 고양이등  미물들의 혼을 먹기 시작했는데

늘 양에 차지 않아서 화를 내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자신의 아들과 남편을

노리는 놈들이 무서워서 원하는데로 계속 시키는 일들을 했는데
어느 날 장농이 다른 집에 가게 되었다고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그것들이 모여 이야기를 했는데 두놈은 집에 들어앉아 박순자를 이용할 동안
허튼 짓을 못하게 아들과 남편을 볼모로 잡고 있기로 했다고 한다.


박순자는 떠나기 싫었지만 모든 일이 다 끝나면 순순히 그 집에서 떠나기로 약속했고
아들과 남편에게는 절대 해를 끼치지 않기로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장롱이 첫번째로 옮겨진 곳에서 여자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조금 힘을 키운 그것이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경로였다.


나는 기가 막혀 입이 떡 벌어졌는데

이야기를 더 하려는 박순자가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


아줌마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는데

코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눈알이 빠질듯 커졌다.


아줌마의 몸이 부러질 것처럼 못 이겨내자

박순자가 순순히 사라진것 같았다.


아마도 아줌마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본인이 버틸수록 고통스러운건 아줌마의 육체일테니까

박순자가 들어갔지만 아줌마의 몸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중간중간 아줌마의 의식이 돌아오는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것과 싸우는듯 싶었다.


점점 얼굴이 하얘지고 지쳐갈때쯤 그것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기력을 많이 써서 지쳤었는지 많이 쇄한 느낌이 들었는데
장군 할머니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뭔가 결심을 한듯 주먹을 꽉 쥐었다.


장군 할머니가 상쪽으로 성큼성큼 가더니 커다란 창을 꺼내왔다.


창은 아주 길고 날이 푸르게 서있었는데 마치 삼국지에서 나올법한 모습이였다.


창엔 용이 전체를 휘감은 장식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그 창을 드니 기세가 엄청나지는게 느껴졌다.


위압감에 난 목덜미가 소름이 끼치도록 오한이 들었고

그것도 순간 움찔하는듯 했다.


장군 할머니는 잠시 부들 떨며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할머니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번쩍 뜨니 마치 본 적은 없지만 부리부리한게

용의 눈 같았는데 할머니의 천천히 말하던 입에선
근엄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뼈를 시리게 했는데
너무 말의 무게가 무거워 정신이 혼미해져 무슨 말인지 들을수가 없었다.


내가 잠시 비틀거리는 찰나에 아까와 처럼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아줌마의 몸을 허공에서 베는 창의 모습이 보였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아줌마가 멍석 위로 풀썩 쓰러졌고

그걸 보는 내 눈앞에 다시 시커먼 털뭉치가

갈라진 배의 내장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괴로움에 몸부림 치듯 발광을 했는데

푸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날았다.


순간 선월이 어디선가 뛰어와서 손을 합장하고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듯한 행동을 했는데
끼아아악 하는 괴음이 들리더니 그것이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떨어졌다.


몸이 점점 타들어가는 것처럼 연기가 산화 되는듯 모습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럴때마다 공중으로 낮게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길 반복하더니 있는 힘을 짜낸듯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갈팡질팡 했다.


그러다 뭔가를 보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기 시작했는데 묶여있던 돼지로 향했다.

아마도 선월이 해놓은 부적이 붙은 못이 결계같은 역활을 했던건지

그것이 뭐에 갇힌듯 갈팡질팡 하다가 돼지로 뛰어든거 같은데

돼지의 몸에 들어간 그것도 내 몸이나 아줌마의 몸에 들어갈 때처럼의
기세가 없었는지 꿀럭꿀럭 하며 돼지의 구멍이란 구멍에 다 세어 들어갔다.


아줌마는 여전히 쓰러져 있었고

선월은 돼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돼지가 심하게 발버둥을 치자

네발을 묶은 끈중에 앞발 쪽이 풀리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도망치려 했지만 뒷다리가 묶여서 이내 쓰러졌고

선월이 돼지의 코를 잡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치자
돼지의 입에서 끄륵 하는 가랫소리가 났다.


그것이 돼지에 들어 나는 소리였다.


장군 할머니가 그 연세에 걸맞지 않게 쐐기처럼 날아들더니

그 큰 창으로 한번에 돼지의 목을 내리쳤다.


푸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피가 공중으로 샤워기처럼 쏟아져 나왔고

내 몸이며 그 근방에 온통 피바다 였다.


멍석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때쯤 돼지는 목이 잘린채로도

한참을 발버둥 치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은 돼지의 잘린 목에서 스물스물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는데

선월이 그 물 위에 검은 재를 뿌렸다.


재를 뿌리자 스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검은 액체가 공중으로 흩어졌고 그게 끝이였다.


나는 돼지의 잘린 목과 내 몸에 묻은 피 때문에

그 자리에서 졸도했고 깨어난건 이틀 뒤였다.

나는 잠을 자고 있었을때 꿈을 꾸었다.


꿈에는 박순자가 나왔었는데

표정이 아주 평안해 보였고 예쁜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박순자는 왠지 말이 없었다.

나는 몇번이나 말을 시켜보려 했지만 내 목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난 아직 궁금한게 많은데

처음 그것과 조우한 날 어떻게 나에게 나타나게 된건지
나는 왜 쉽게 죽지 않았는지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너무 많은데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저 편안한 표정의 박순자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사라지듯 없어지는걸 본게 다였다.


이윽고 이어진 꿈에는 아주 큰 산이 두개가 있었는데

희안하게도  그 큰산 양쪽 봉우리를 기둥삼아 그네가 매달아져 있었다.


그 그네에 갑자기 내가 타 있었는데

한발을 크게 구를때마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너무 재밌어 더 크게 발을 굴렀는데

한참을 올라가자 멀리 큰 강이 보였다.


강에는 작은 나룻배가 있었고

나는 카메라 줌인을 하듯 그 먼 강과 나룻배가 점점 선명하게 보였고
나룻배에 누군가가 타고 있는것도 보게 되었다.


그 누군가는 나에게 팔을 크게 휘저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찌푸리자 점점 얼굴이 보였다.


아줌마 였다.


아줌마는 정말 환한 얼굴로 나에게 팔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우린 다시 만날꺼니까!"


아줌마가 처음에 날 만났을때 했던 인사였다.


난 너무 반가워 나도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난 너무 기뻤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계속 났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고
축축한 느낌에 눈을 떴다.


난 굿당의 내 방 천정을 보고 있었다. 

방에는 나 혼자 뿐이였고 잠시 멀뚱하게 있었다.


순간 뭔가 쎄한 느낌에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급격한 어지러움에 이내 쓰러졌다.


쿠당탕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방 밖에서 여러 발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부셔지듯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건 오빠였다.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고

오빠의 뒤를 이어 선월과 제자 아줌마 장군 할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아줌마는요? 했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뭔가 잘못됨을 느껴서인지 나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한채 그대로 멍하게 있었다

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 검은 상복차림이였고 뒤늦게 들어온 아저씨의 표정이 확실한 답이였다.

어째서인지 묻지 않았다.

무조건 나 때문이니까 왜 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표정을 보고 다들 하나 둘 눈을 피했다.
장군 할머니만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광이며 서슬퍼런 기세는 온 데 간 데 없이
자식 잃은 어미의 흐트러진 모습만이 장군 할머니의 전부였다.


할머니는 덤덤한 말투로 나에게 짧게 한마디 한 후 밖으로 나가셨다.


"딸년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니라"


선월은 그 말을 듣고 나지막히 흐느꼈고

아저씨도 오빠도 제자 아줌마도 울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울음이 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굿당은 장례식 장으로 변해 있었다.


상복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가니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모두 아줌마를 배웅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였을 테지.


나는 그때까지도 실감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이제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영정 사진을 모신 곳으로 걸어갔다.

내가 쓰러질까 오빠와 선월이 부축했지만 난 꼿꼿히 잘 걸어갔다.


난 두번 절을 하고 향을 꽂곤 맥없이 주저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줌마는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는지 아주 젊었을때 예쁜 모습의 사진이였다.


그 예쁜 모습 그대로 딸이 있는 곳으로 갔겠지? 
그 업이라는거 이렇게 풀고 가셔야 했던걸까?

왜 하필 나 때문에? 라는 의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딸이야? 라며 웅성거릴 정도로 울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3일장이 끝나고 아줌마는 딸이 있는 선산으로 옮겨졌다.

딸은 화장을 해서 선산에 묻었다고 했다.

아줌마도 똑같이 화장해 딸 바로 옆에 묻혔다.

그곳에서 아주 행복하리라 믿는다.

그 후로는 난 더 이상 시달림을 받지 않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줌마의 덕이다.


그리고 장군 할머니. 선월. 제자 아줌마. 아저씨. 오빠. 박순자의 덕이기도 하다.
오빠와 아저씨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연락하지 않는다.
어디에 계신지도 모른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오빠는 지금의 남편이,

아저씨는 이제는 돌아가신 시아버지

박순자는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되었다.


그들을 위해 난 오늘도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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